내면의 여백을 침범하는 인연에 대하여
삶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우리가 머무는 공간은 점차 단순해진다. 거실의 가구를 줄이고, 서랍 속 낡은 물건들을 정리하듯, 마음의 방 역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어 맑은 바람이 통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그 여백이야말로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에 얽매여, 스스로 만든 그 소중한 여백을 타인에게 내어주곤 한다.
세상에는 만나고 돌아서면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내면의 평온이 여지없이 깨져버리게 만드는 관계가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인간관계가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고 해서 그것이 늘 깊고 맑은 소통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가치관을 은근히 깎아내리거나, 지나친 참견으로 마음의 경계를 침범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인연들. 그들은 내 삶의 안뜰을 어지럽히는 불청객과 같다.
젊은 날에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참기도 하고, 넓은 인맥을 유지하는 것이 도리라 여겨 억지로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본연의 빛을 잃어가면서까지, 내 마음의 고요를 깨뜨리면서까지 붙잡아야 할 대단한 관계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누군가와의 거리를 두거나 인연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은 결코 매정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미움의 표현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가장 깊은 존중이자 책임이다. 내 마음의 용량이 그리 크지 않음을 인정하고,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품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에만 집중하겠다는 결단이다.
진정으로 좋은 인연은 서로의 여백을 탐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존재를 묵묵히 바라보며, 필요할 때 따뜻한 찻잔 하나를 건넬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굳이 많은 말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만나고 나면 도리어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관계. 우리 삶은 그런 밀도 높은 몇몇의 인연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친다.
내면의 여백을 침범하는 소란스러운 인연들을 과감히 덜어내자. 그 비워진 자리에 차오르는 것은 쓸쓸함이 아니라, 아무런 걸림이 없는 영혼의 자유와 깊은 평화다. 그 고요한 여백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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